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합스부르크 제국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> [[오스만 제국]]이 유럽 동남부로 진입하면서, 이 지역에 있던 과거의 독립 국가들 - 특히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- 은 이제 자투리 영토만 남은 국가에 대해 합스부르크에 보호를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. 근본적으로 독일계 국가였던 신성 로마 제국 산하 오스트리아 대공국은 중-동부 유럽의 다종족, 다민족 합스부르크 제국으로 변모했고, 이 제국은 신성 로마 제국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1806년 이후로도 지속되어 1918년까지 존재했다. > > 합스부르크 제국의 특수성은 그 다종족적, 다민족적 특성이 아니라 이 다민족 제국을 유지시킨 요인에 있었다. 합스부르크의 독일인들은 특별히 인구가 많거나 군사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었다. 즉 오스만 제국의 팽창이 이들 기독교 영토에 가하는 더 큰 위협이 없었다면, 합스부르크는 결코 유럽 동남부에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거나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. 한마디로 합스부르크는 방어 세력으로 생겨난 제국이었다. 동남부 유럽인들은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 중 차악으로 어쩔 수 없이 합스부르크를 택했다. >---- > 민족 / 아자 가트, 알렉산더 야콥슨 1526년 [[모하치 전투]]에서 헝가리 왕국이 [[오스만 제국]]에게 대패하고 국왕인 [[러요시 2세]]마저 전사하여 후사가 끊기자, 당시 오스트리아 대공이자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는 [[페르디난트 1세]]가 그의 누나이자 아내인 안나와 결혼했다는 점과 조부 [[막시밀리안 1세(신성 로마 제국)|막시밀리안 1세]]와 보헤미아-헝가리-크로아티아 국왕 [[울라슬로 2세|블라디슬라프]]가 맺은 결혼 상속 협정을 내세워 야기에우워 왕조가 보유한 서부 헝가리 왕국, [[보헤미아 왕국]], 크로아티아 일대를 물려받게 되었으며, 이로써 [[합스부르크 제국]]이 형성되었다.[* [[신성 로마 제국]]의 [[황제]]는 [[선제후]]의 투표 결과로 선출되기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가 곧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배하고 있는 영토라고 볼 수 없었다. 애초에 신성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수립자 [[오토 1세]] 때도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영토는 황제의 직할영지로 한정되었다. 중세 후기 [[호엔슈타우펜 왕조]]가 괜히 [[시칠리아 왕국]] 경영에 골몰해 제국 문제를 등한시한 것이 아니다.] 하지만 헝가리 왕국의 지배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는데, 헝가리 귀족 회의가 그를 헝가리 국왕으로 선출했지만 동부에 기반을 둔 일부 헝가리 귀족들은 페르디난트에 반발하여 서포여이 야노시(Szapolyai János 1487~1540)를 옹립했다. 페르디난트 1세는 오스트리아군을 이끌고 헝가리로 진격했고, 수세에 몰린 야노시 1세는 신하가 되는 대가로 오스만 제국의 [[파디샤]] [[쉴레이만 1세]]에게 도움을 청했다. 1529년 쉴레이만 1세는 [[오스만 제국군]]을 이끌고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여 [[제1차 빈 공방전|빈을 포위]]했으나 실패하고 물러났다. 이후에도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몇차례 전투가 벌어졌으나 결국 헝가리는 3개로 분할되어 합스부르크 왕가는 헝가리의 서북부만을 차지하게 되었고, 헝가리의 중부 지방은 오스만 제국의 직할 통치를 받는 [[오스만 헝가리]]가 되었으며, 동헝가리는 서포여이 야노시의 아들 서포여이 야노시 지그몬드(Szapolyai János Zsigmond 1540~1571)가 통치하는 [[동헝가리 왕국]]이 되었으나 헝가리 왕위를 [[막시밀리안 2세]]에게 반납하고 [[트란실바니아 공국]]을 칭해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 되었다. 1618년 새로 즉위한 [[페르디난트 2세]]가 전임 황제들과 달리 개신교를 적극적으로 탄압하자 보헤미아의 신교도들이 반발하여 [[30년 전쟁]]이 일어났다. 1648년 맺어진 [[베스트팔렌 조약]]의 결과 합스부르크 왕가는 영토를 상실하지는 않았으나 전쟁으로 영토의 상당 부분이 큰 타격을 입었다. 또 신성 로마 제국의 각 영방국들의 주권이 실질적으로 인정되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이름만 남은 껍데기로 전락했다. 1683년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받아 [[제2차 빈 공방전]]이 벌어졌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[[레오폴트 1세]]는 독일 각국과 폴란드-리투아니아 등으로 구성된 [[신성 동맹]]군을 결성하여 격퇴했다. 합스부르크 왕가가 주도하는 신성 동맹군은 여세를 몰아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동유럽의 영토를 침공하여 [[대튀르크 전쟁]]이 벌어졌다. 오랜 전투 끝에 1697년, [[사부아 공자 외젠]]이 활약한 젠타 전투에서 신성 동맹군이 결정적인 대승을 거두어 1699년, [[카를로비츠 조약]]이 체결되었고 합스부르크 제국은 바나트(Banat)[* 현재 루마니아 [[티미쇼아라]]와 세르비아 [[즈레냐닌]]에 걸친 역사적인 지역.]를 제외한 헝가리 전역을 탈환하였다. [[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]] 중인 1705년 [[스페인령 네덜란드]][* 현재 [[벨기에]]와 [[룩셈부르크]].]를 차지하여 지배하기 시작했으며, 1714년 종전 후 맺어진 [[위트레흐트 조약]]과 라슈타트 조약으로 합스부르크의 저지대 지배권이 공인되었고 [[나폴리 왕국]], [[밀라노 공국]], [[사르데냐]]를 획득하였다. 대튀르크 전쟁의 결과에 불복한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제6차 오스트리아-튀르크 전쟁(1716년 ~ 1718년)이 일어났다. 전쟁 결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바나트와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북부, 왈라키아 서부 등을 획득했다. 전쟁 중인 1717년 합스부르크 제국이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하고 있는 틈을 타 스페인의 [[펠리페 5세]]가 [[위트레흐트 조약]]에 불복하고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과 남부 이탈리아의 지배권을 주장하며 [[사국 동맹 전쟁]]을 일으켰다. 펠리페 5세가 합스부르크 제국이 전쟁 중인 사이를 노린 것을 저지하기 위해 [[그레이트브리튼 왕국|영국]], [[프랑스 왕국]], [[네덜란드 공화국]]이 합스부르크 제국 편에 참여하여 동맹이 형성되었다. 후에 [[사보이아 공국]]도 참전했다. 1720년에 맺어진 헤이그 조약으로 [[카를 6세]]는 [[사보이아 공국]]의 [[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]]에게 [[사르데냐]]를 넘겨주는 대신 나폴리 왕국과 가까운 [[시칠리아]]를 획득했다. 1734년 일어난 [[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]]의 결과 1738년에 체결된 빈 조약으로 [[나폴리 왕국]]과 [[시칠리아 왕국]]을 상실하고 대신 [[파르마 공국]]을 획득했다. 빈 조약 체결 과정에서 [[카를 6세]]는 딸 [[마리아 테레지아]]가 [[합스부르크 제국]]을 [[1713년 국사조칙|계승하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]] 프랑스 등 주변국들에게 많은 양보를 했다. 1735년부터 1739년까지 이어진 [[러시아-튀르크 전쟁]]에서 [[러시아 제국]]의 동맹국으로 참가했다.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바냐루카 전투, 그로츠카 전투, 벨그라드 전투 등을 모조리 패배했다. 전쟁 결과 [[벨그라드 조약]]이 체결되어 [[합스부르크 세르비아|세르비아]]와 보스니아 북부, 왈라키아 서부의 올테니아 등 이전 전쟁에서 획득했던 영토 중 상당수를 다시 오스만 제국으로 반환하였다. 1741년 [[마리아 테레지아]]의 계승을 두고 [[프로이센 왕국]]의 [[프리드리히 대왕|프리드리히 2세]]가 이의를 제기하여 [[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]]이 일어났다. 전쟁의 결과 1748년 마리아 테레지아의 계승을 공인받았으나 [[파르마 공국]]과 [[보헤미아 왕국|보헤미아]]의 일부였던 [[슐레지엔]]을 상실하였다. 1772년부터 1795년까지 3차례에 걸쳐 러시아, 프로이센과 함께 [[폴란드-리투아니아 연방]]을 [[폴란드 분할|분할]]했다. 오스트리아가 차지한 영토의 크기는 가장 작았으나 인구는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. [[프랑스 혁명 전쟁]]이 진행 중이던 1795년 프랑스가 [[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]]를 점령하면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상실했다. 1796년,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[[프랑스군]]이 합스부르크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이탈리아 반도 북부를 침공했다. 나폴레옹과의 [[이탈리아 원정|이탈리아 전쟁]] 후 맺어진 캄포포르미오 조약에 의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프랑스 합병이 인정되었고, 이후 [[빈 회의]]에서도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회복하지 못했다. 같은 조약에 의해 합스부르크 왕가가 다스리던 밀라노 공국과 만토바 공국을 상실했고 방계 일가가 다스리던 [[토스카나 대공국]]과 [[모데나 공국]]의 군주도 쫒겨났다. 대신 [[베네치아 공화국]]과 [[달마티아]]를 획득했다. 합스부르크 왕가는 베네치아를 제외하고 북이탈리아에 일체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고, 또한 프랑스가 합스부르크 제국으로부터 획득한 영토를 중심으로 북이탈리아에 [[치살피나 공화국]]을 세우는 것을 인정했다. 1804년 [[프란츠 2세]]는 합스부르크 세습령을 통합하여 [[오스트리아 제국]]을 선포하였다.[* 이렇게 [[프란츠 2세]]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를 겸하는 이중 황제가 되었지만 신성 로마 제국은 1806년에 해체되었다.] 이후 [[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|메테르니히]]의 주도로 나폴레옹을 격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, 다시 중동부 유럽의 패자로 한동안 군림하였다. 그러나 1859년 [[이탈리아 통일]]전쟁과 1866년 [[프로이센-오스트리아 전쟁]]의 패전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은 이전의 강력한 [[국력]]을 다시 회복하지 못했고, [[대타협|퇴보]]를 거쳐 [[사라예보 사건|나락으로]] [[제1차 세계 대전|떨어지게]] [[생제르맹 조약|된다]]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